안녕하세요, 호텔리어 마이크 입니다
벌써 홍콩 입성기 세번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네요.
(입성기 마치면 정착기, 생활기도 나눌 예정입니다.)
앞선 이야기 놓치셨으면 요기서 확인!
결국 결정은 내가!
인터뷰를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와서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 나갔다.
기회를 찾아서 지원하고, 인터뷰까지 보았지만, 정말 옮은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 되었다.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라서, 고민이 많아질 때는 항상 주변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인터뷰까지 할 수 있었던데 큰 공을 세운 모니카 (두 번째 편에 등장)를 포함해서 지금 NUO Beijing 에서 DOSM (Director of Sales and Marketing/ 판촉총괄이사) 으로 일하시는 구정현 지배인님께도 의견을 구했다.
(당시에는 Kerry Hotel Beijing 에서 Director of Business Development 로 근무)
근무 중 땡땡이기는 한데, 구 지배인님께서 근무하시는 호텔 근처 미팅이 끝난 후 차 한 잔 얻어 마실 겸 만나 뵈었다.
일단 지금까지 진행 상황, 이직하고자 하는 이유 및 나의 생각들 (**)을 털어 놓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홍콩까지 날라가서 인터뷰를 보았고, 내 스스로를 보다 도전적인 상황에 던져서 극복하고 싶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쟁적인 분위기에서의 근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
구 지배인님께서도 나의 의견에 동의 하셨다. Expat 패키지로 특별 대우를 받으며 있는 것도 좋지만, 커리어 초기에 그런 맛에 빠지면 장기적으로 발 빼기 힘든 늪일 수도 있다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 한 층 성장할 수 있다고.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가미하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이 여행 계획을 할 때, 물건을 사기 전에 블로그나 웹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마음을 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Reference Check의 중요성
난 DOSM 을 통해 연락을 하고 바로 인터뷰를 잡은 후 제일 마지막에 인사부 과장을 만났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원서 조차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인터뷰는 다 마쳤지만, 인사부 과장이 절차상 필요한 서류를 보내라고 했다. 북경으로 돌아와서 지원서를 작성하는데 Reference Check 할 수 있는 사람 신상을 기록하는 란이 있어서 누구를 써야 할까 한창 고민 하다가 딱 떠오르는 두 명이 있었다.
1) 북경 켐핀스키 호텔에서 근무하다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긴 내 전 보스이자 은인 Wolfgang Putz 와 2) Hotel Manager 였던 Emile Bootsma (지금은 켐핀스키 호텔 그룹의 플래그쉽인 Adlon Kempinski Berlin 총지배인).
난 기입하면서도 설마 진짜 확인할까? 하는 의심을 하였는데 서류를 제출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Wolfgang Putz 한테 LinkedIn 메세지가 왔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좋으니깐 행운을 빈다고.
이렇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며 3주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인터뷰 느낌은 좋았는데 연락이 계속 없으니깐 슬슬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포기할 건 포기하자!
2012년 구정 연휴 차 한국에 있었는데, 남겨놓은 한국 전화 번호로 전화 한통이 왔다.
HR Manager 로 부터의 전화!!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했다.
그 말인즉슨, 인터뷰는 통과 되었고, 협상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 유후~~~~~
사실 협상에 대해서는 마음을 많이 비우고 있었다. 여러가지 사항에서 분명히 감수할 부분이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
주요 사항들에 대해서 켐핀스키에서의 혜택과 비교해 보자.
<집>
- 지원 전혀 없음 -
북경: 호텔 근처 아파트 1인실 제공
<월급>
- 40% 인상 -
북경과 홍콩의 물가 차이를 생각하고, 집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큰 인상은 아니다. 게다가 북경 월급은 세 후 기준이고, 40% 인상된 홍콩 월급은 세 전 (물론 소득세율이 낮기는 하다). 무시무시한 홍콩 집세를 생각하면 수중에 남는 돈은 거의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대신 집 환경이 북경만 못 했음.
<보험>
- UMP 라고 개인 병원 연합체 등록 된 의원들 보험 제공 -
북경: 외래 상담비만 10만원이 넘는 International Hospital 진료 가능한보험 제공.
(중국에서 현지 병원은 갈 곳이 못 되지 못했다)
<보너스>
- 호텔 전체 보너스에 따라 제공 -
(호텔 실적에 따라 보통 2-3달치 월급)
유일하게 북경에 비해서 좋았던 것. 북경에서는 한 달치 월급 보너스로 고정이었다.
<계약조건>
- 정규직 (Open Contract) -
북경에서는 1년이나 2년 단위로 계약 갱신을 하였었다. 3년 있는 동안 매년 재계약.
홍콩에서는 MPF 라고 부르는 연금제도가 있어서 회사에서 일정액씩 부어준다. 개인이 원하면 월급에서 추가 납입 가능
(나는 저축 개념으로 추가납입)
대략적인 월급 가이드 라인은 이직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 모니카를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사부에서 제안한 월급에 큰 토를 달지는 않았는데, 집세 보조금을 좀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예상대로 힘들다는 답변. 조금 이라도 부담해 달라고 계속 이야기 하니깐, 내부 협의하겠다고 하고 나서 나중에 HK$1,000 (한국돈으로 15만원) 정도 월급을 올려주는 걸로 합의 보았다. 하지만 홍콩 월세는 평균 100만원에 육박한다는 것....
몇 번의 논의 끝에 조건 합의를 마치고, 비자를 위한 수속에 들어갔다.
그 때가 2월 중순이었고, 계약서를 싸인한 후 켐핀스키 호텔의 보스에게 사직서를 제출 하였다.
뿌리친 승진 기회
사직서 제출 후 중국인 DOSM 과 독일인 DOS 와 면담을 하였다.
Q. 왜 그만 두려고 하느냐?
A. 좋은 기회가 있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한다.
Q. 어디로 옮기느냐?
A. 홍콩에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다.
Q. 지금 있는 호텔에서 잘 해왔고, 새로운 기회가 많을텐데 구지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브랜도로 꼭 옮겨야 하나?
A.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은 내가 꿈꾸던 호텔 중 한 군데 였기 때문에, 꼭 경험해 보고 싶다.
이런 식의 대화들을 주고 받다가, DOSM 이 제안을 한다.
Q. 니가 지금 Sales Manager 인데, 다음 달 부터 Senior Sales Manager 로 승진 시켜주고, Acting Assistant Director of Sales 역할을 줄게. 1년 동안 잘 수행하면 내년에 ADOS 로 승진하는거야. 어떻게 생각해?
홍콩 가면 또 Sales Manager 잖아.
아무리 중국 호텔 시장의 포지션 인플레이션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름 파격적인 제안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난 이런 오퍼에 대한 가능성 까지 생각을 한 상태에서 마음의 결정을 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더 있으며 얻은 타이틀이 장기적으로 내가 경쟁력을 쌓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지금은 가끔, 자리에 따른 역할이 있기 때문에 승진해서 자리를 지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굳건한 자세를 취하자, DOSM 과 DOS 는 받아들이고, 후임자 선별하고 인수인계 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다른 호텔의 한국인 메니저들 중 내가 꼬셔서 지원을 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기도 했다. 그들 중 두 명이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
한명은 북경 내 다른 호텔에서 영업을 하던 잘 아는 여동생 (후보 1)
다른 한명은 천진에서 세일즈를 하던 내 또래 남자 (후보 2)
인터뷰는 DOSM, DOS, DOHR 과 내가 참석한 가운데 커피 숍에서 진행 되었다.
<후보 1의 인터뷰>
후보 1은 세일즈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아주 어린 친구였다. 오픈 한지 얼마 안된 호텔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경력 없이 시작한 거라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셋팅이 되어 있는 켐핀스키로 와서 근무하라고 내가 꼬셨다. 경력 부족을 보스들이 걱정을 했지만 일단 인성과 팀 융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후보 2의 인터뷰>
후보 2 는 나이가 조금 있던 만큼, 경력이 더 풍부했다.
천진이라는 공장이 많은 도시에서 삼성 및 한국 비지니스를 주로 다뤘던 메니저. GRO, GRM 을 거쳐서 세일즈 메니저로서 커리어를 쌓아가던 남자였다. 하지만 인터뷰 중에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1) 한국 손님들의 잔 심부름까지 했다는 것 (심카드도 구해주고, 집 계약하는 것도 도와주고, 등등). 2) 그리고 요구하는 샐러리 수준이 터무니없이 높았다. 북경쪽 한국인 세일즈 지배인들 급여에 대한 사전 조사가 없었는지, 다들 듣고, 어이없어 했다. 요청 급여도 급여지만, 일단 잔 심부름 한 것을 당연한 영업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 했는지, 너무 자랑 스럽게 강점으로 이야기를 해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 하였다.
내가 소개한 동생이 뽑혀서 좋았지만, 내가 일 했던 때 만큼의 대우는 받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여러측면에서 난 운이 좋았던 듯 하다).
너무 신속했던 비자 수속
보통 홍콩 취업 비자 수속하는데 4주에서 6주가 걸린다. 만다린 오리엔탈 인사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고, 2월 중순에 수속이 들어갔으니 딱 계약 기간이 끝나는 3월말까지 꽉 채우고 가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지 한달 치 보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
그런데 이게 왠일!
2주만에 비자가 나와 버린 것이다.
나를 뽑은 자리가 거의 6개월 간 공석이었던 자리였기 때문에 만다린 오리엔탈에서는 최대한 빨리 합류 하기를 원했던 상황. 목돈까지는 아니지만 백만원 단위의 보너스 였기 때문에 그냥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직하는 호텔의 DOSM Lucy에게 양해를 구하는 이메일을 썼다
"3월말일까지 일하면 한달치 보너스가 나오는데, 4월달 부터 시작하면 안될까?"
이에 대한 Lucy 의 회신은
“우리 인터뷰할 때 그런 이야기 없었는데, 인사부랑 면접 볼때 이야기 했었어? 보너스, 당연히 중요하지, 보너스 받고 오는걸 막을 생각은 없는데, 난 비자 나오는대로 니가 올 수 있는 줄 알았고, 새로운 내용이라서 그냥 물어본거야.”
Lucy는 별 의미를 담지 않은 이메일을 보냈겠지만 소심한 마음에 처음부터 밑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을 했다.
(인터뷰 할 때 느꼈던 Lucy 의 카리스마를 기억하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Farewell & Relocation
3월 마지막 주 금요일까지 인수인계는 계속 되었다.
내가 떠날 때 쯔음에 독일인 DOS 도 캐나다로 남편 따라서 이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공동 송별 파티를 했다.
맛있는 Kempi Deli Cake 과 꽃다발, 총지배인을 비롯한 동료들의 송별 인사들을 앨범으로 만들어서 줬는데 가슴이 뭉클해 졌다. 진짜 가는 구나….
금요일에 송별회를 마치고, 여러 부서의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호텔을 떠났다.
다음 날 홀로 캐리어 두 개와 배낭을 매고, 공항으로 향했다.
*왠만한 짐들은 내가 박스에 포장해서 운송 회사를 통해 홍콩 호텔로 미리 부쳤다. 외국인 우대 패키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사를 갈 때도 지원금이 지급 되었다. 600유로는 중국에서 홍콩으로 짐들을 보내기에 충분했던 금액.
공항 가는 길에 택시 창 밖을 바라보며, 북경에서 다시 일 할 기회가 있을 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였고,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 홍콩 입성기 끝! =
홍콩 정착기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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