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호텔리어 마이크 입니다.
계속해서 추억팔이를 하고 있는데, 당분간 중국으로의 취업과 적응과정에 대해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이들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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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학기는 2008년 9월에 시작하였다. 08년 9월하면 떠오르는게 뭔지 곰곰히 생각해 보라.
금융위기! 리만 브라더스 사태!
졸업 시기가 좋지 않았다. 먼저 졸업해서 그 시기에 일을 찾고 계셨던 몇몇 선배님들도 금융위기 때문에 합격되었던 호텔에서 유보 통보를 받기도 하셨고, 오퍼 자체를 받기가 더 어려웠다.
대기업 공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호텔과 같이 해외 호텔도 수시채용이기 때문에 구직정보 구하는게 더 쉽지 않다. 대부분의 공석도 업계내 아는 사람의 소개를 통해서 먼저 접한 사람의 몫이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족보같이 돌던 호텔 별 인사 담당자담당자들에게들 정보에 의지해서 이메일 보내는 것.
(요즘엔 Linked In 을 통해서 리서치가 조금 수월해진 듯 하다)
나는 군 제대 후 늦게 해외 생활을 시작한 만큼 해외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한국을 제외한, 중국, 홍콩, 싱가폴, 두바이, 태국에 있는 70-80여개 호텔에 이력서를 보냈다.
역시나 70프로 이상은 회신도 없고, 그나마 온 곳들은 뽑는 포지션이 없다는 회신일 뿐. 켐핀스키 호텔도 그 중에 하나 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일을 못 구하고 마음 조리며, 학기 마지막 주를 맞았다.
아직도 기억하는 마지막 주 “화요일”.
자리 없다고 연락이 왔던 켐핀스키 호텔 중국지역 Regional HR Ditector 한테서 북경에 있는 켐핀스키에서 Room Division Trainee 를 뽑는데 인터뷰 보자고 연락이 왔다.
이때는 북경이라는 도시가 어떤지 감이 없었고, 브랜드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거의 없던 상태였지만, 무조건 알았다고 하며 인터뷰 시간을 잡았다. 벼락치기 인터뷰 준비/공부를 하고, 다음 날인 수요일에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고 내가 붙으면 북경 호텔의 Training Manager 한테 직접 연락이 올거라고 했다.
주말에는 기숙사 방을 빼야했던 상황이라서, 떨어지면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 했던 상황.
마음 조리며 하루종일 전화기만 붙들고 있던 목요일.
전화벨이 울렸고,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합격 통지를 받고 정말 기뻤다.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첫 학기 중 교내 인턴쉽 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스위스 로잔의 이태리 식당에 면접을 봤는데. 똑 떨어졌다. 역시나 학기 마지막 주까지 못 찾고 있고 주말에 짐을 빼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떨어졌던 레스토랑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기사 회생했다. (그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클릭)
비록 정직원이 아닌 3번의 인턴쉽 후에 또 1년짜리 Trainee 포지션 (이름만 Management Trainee) 이었지만,
졸업 후 소속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 너무 기뻤다.
중국어를 태어나서 한번도 배워본 적 없는 나의 중국 취업.
두렵기는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첫 직장 - 현실은 또 다른 인턴>
중국은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갔던 상해, 항저우, 수저우 패키지 여행 때 가본게 다 였는데,
북경이라는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학교 수업 중에 중국 호텔산업에 대한 여러 케이스 스터디가 있었는데,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중국 경제발전과 함께, 호텔 수요가 증가하면서, 제1시도시인 북경, 상해, 심천, 광저우는 물론, 제2도시들까지 엄청 많은 호텔들이 오픈 하는데, 거기에 비해서, 글로벌 브랜드의 Quality 를 전달할 수 있는 직원들이 태반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 논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아직 있다는 것.
케이스 스터디를 보면서, 중국 북경이나 상해에서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막연함에 몇군데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곳의 Room Division Management Training 프로그램은 특이했는데, 12개월 교육 중 9개월은 Room Division (Front office, Housekeeping, Executive floor) 에서, 나머지 3개월은 Food & Beverage (식음료) 에서 트레이닝 받도록 되어 있었다.
월급은 2009년 당시 RMB 3,200 (한국돈 50만원정도).
숙소는 호텔 근처 호텔 소유 로컬 아파트에서 2인 1실로 배정 되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남자 인턴이 없어서, 11개월 동안 혼자 쓰는 행운을!)
로컬 아파트 여러 단지 중 하나의 반 정도를 호텔에서 소유를 하고, 장기근속 직원들이나 외국인 직원 및 인턴들에게 제공해 왔다. 호텔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였기 때문에 중국의 교통체증을 겪을 일 없이 아주 편했다.
특이했던 점은,
엘레베이터 안에 각 층 버튼을 눌러주는 아주머니가 항상 상주해 계셨다는 것.
아침 출근 길에 아파트 중앙 공원에서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태극권을 같이 하거나 요상한 노래에 춤추고 있는 그런 로컬 아파트였다.
<딴 나라 이야기: 세일즈>
하우스키핑과 클럽 층에서 한달 씩 교육을 받고서, 프런트 오피스에서의 근무가 시작될 3개월 차에 접어들 때, 그 당시 호텔 메니저 셨던 Emile Bootsma (현 Managing Director of "Hotel Adlon Kempinski Berlin"/ 켐핀스키 호텔 그룹의 글로벌 Flagship 호텔이자 오바마 대통령과 마이클 잭슨이 묵었던 호텔이다) 께서 본인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사실 인턴 시절에는 호텔 넘버 2인 호텔 메니저 (일반 회사로 치면 부사장) 가 지금 보다 더 높아 보였기 때문에, 약간 쫄은 상태로 방에 들어 갔다.
인턴 생활은 어떤지, 북경에서 적응은 잘 하고 있는지 등 안부를 물어 보시다가 다짜고짜 제안을 하나 하셨다.
'세일즈 팀에서 일해 볼 생각 있어?'
그 당시에 한국인 여자분이 세일즈 팀에 Assistant Director of Sales 로 7년째 일하고 계신 건 알고 있었는데, 2개월 동안 눈 인사 한번 한게 다 였다. 그 분이 다른 호텔로 영전하게 되면서, 한국인 비지니스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한데, 임시로 세일즈 팀에 가서 중국 세일즈 메니저들이 한국 고객 관리차 미팅 갈 때 같이 참석해서 언어적으로 도움을 줘라~ 하는 뭔가 애매모호 한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북경에 대부분 한국 대기업들의 중국총괄본사가 위치해 있고, 그 사무실들이 호텔과 멀지 않아서, 한국 손님이 꽤 있는 편이었다. 주중 한국 대사관도 바로 길 건너편이라서 정부쪽 인사들의 발길이 꾸준했던 곳이기도 하다.
“세일즈”
호텔 학교에서 마케팅은 가르치는데, 세일즈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 때까지 나에게 세일즈는 정말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말 주변 좋고, 이주 유머러스한 사람만 하는 일인 걸로 단정짓고 있었다. 말 그대로 Out of 안중 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딴 나라 이야기로 생각 하던 일이 눈 앞에 딱 놓여지니, 내가 세일즈 부서에서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나보고 뭘 팔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두려움 속에서 한 가지 든 생각은
“지금 인턴 신분이고, 이때 아니면 언제 세일즈 부서에서 일을 해 보겠어.
만약에 정말 아닌 것 같으면 객실부로 돌아오면 되지”
호텔 메니저님께 해보겠다고 말씀 드리고, 다음 날 바로 세일즈 팀에 보내졌다.
To be continued....
**공감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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